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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끄적끄적47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 이슬아 가운을 벗고 무대에 오르면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몇 시간 동안 내 알몸을 그렸다. 연필이 종이에 닿는 소리를 들으며 시선 속에서 멈춰 있는 동안엔 아무런 이야기도 생각하지 않았다. 다시 옷을 입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나를 둘러싼 그림들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나를 그려놓은 그림들이었는데 어쩐지 모두 그들 자신을 조금씩 닮아 있었다. 허리가 긴 사람은 내 허리를 실제보다 더 길게 그려놓았고, 입술이 두꺼운 사람은 내 작은 입술을 실제보다 더 도톰하게 그려놓았다. 코가 높은 사람이 그린 나의 코는 실제보다 오뚝하였고 미간이 좋은 사람이 그린 나의 미간은 실제보다 좁았다. 누구나 남을 자기로밖에 통과시키지 못한다는 점을 두 눈으로 확인했을 때 나는 조금 위안이 되었던가, 아니 조금 슬펐던가. - 183p .. 2023. 7. 15.
사랑하는데 외로워 - 지현주 내가 상대를 과연 알 수 있다 하려면 얼마나 그를 겪어봐야 하는 걸까. 아니, 상대를 내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할까. - 80p 누군가를 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때로는 위험한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알아가기 더이상 귀찮을 때 안목이나 판단아리는 걸 갖다 붙여 인연을 끝낸다. 내가 고등어에 대해 모르는 만큼 사람들에 대해서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상대의 단점은 어떤 상황에서 벌어진 결과인지, 그게 그 사람의 전부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데 내가 상대에 대해 판단하는 것이 옳은 걸까. 끝난 인연에 대해 함부로 평할 수 있을까. 상대도 나에 대해 모름은 물론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그는 나의 인생을 모르고 나의 삶과 세세한 근황과 오.. 2023. 7. 14.
부지런한 사랑 - 이슬아 스물아홉 살인 지금은 더이상 재능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지 오래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다. 재능가 꾸준함을 동시에 갖춘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창작을 할 테지만 나는 타고나지 않은 것에 관해, 후천적인 노력에 관해 더 열심히 말하고 싶다. 재능은 선택할 수 없지만 꾸준함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10년 전의 글쓰기 수업에서도 그랬다. 잘 쓰는 애도 매번 잘 쓰지는 않았다. 잘 못 쓰는 애도 매번 잘 못 쓰지는 않았다. 다들 잘 썼다 잘 못 썼다를 반복하면서 수업에 나왔다. 꾸준히 출석하는 애는 어김없이 실력이 늘었다. 계속 쓰는데 나아지지 않는 애는 없었다. - 24p 꾸준함은 선택할 수 있다.. 2023. 7. 13.
긴긴밤 - 루리 《긴긴밤》은 인간의 이기심과 동물들의 상호의존을 그린 이야기로 시작된다. 주인공인 흰바위코뿔소 노든은 코끼리 고아원에서 자라며 코끼리 식구들과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가족들은 노든에게 코끼리에게 의지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며 서로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상호의존하는 삶의 소중함을 전해준다. 평온한 코끼리 고아원에서 머무느냐 세상으로 나가느냐 기로에서 용기를 내 결국 노든은 세상으로 나간다. 그곳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딸을 낳고 행복한 날들을 보낸다. 하지만 총을 든 인간들의 습격에 노든은 아내와 딸을 한꺼번에 잃고 동물원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 후, 노든은 적대적인 감정과 복수에 사로잡혔지만 앙가부라는 코뿔소와 친구가 되며 변화를 겪게 된다. 하지만 앙가부의 뿔이 잘려 죽고, 결국 노든은 지구상에서.. 2023. 7. 10.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 베르나르 베르베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첫 번째 자전적 에세이인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는 작가의 삶과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유쾌하고 필치한 책이다. 이 책은 베르베르가 어떤 삶을 살며 어떻게 글을 써왔는지를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베르베르는 상상력과 창조력으로 방대한 작품 세계를 창조해왔으며, 이 책은 그가 어떻게 그러한 작품 세계를 만들어냈는지를 공유하고 있다. 이 책은 베르베르의 어린 시절부터 저녁의 수프를 창간한 청소년기, 개작과 퇴짜를 거듭하며 데뷔한 신인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 베르베르의 삶은 도전과 모험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의 경험과 만남은 소설 속 등장인물로 재탄생하며 그의 작품과 자연스럽게 얽혀있다. 이 책은 베르베르의 성장 과정과 창작 과정을 솔.. 2023. 6. 27.
가녀장의 시대 - 이슬아 이 책을 열자마자 감탄부터 했다. 문체가 너무나도 담백했다. 담백하고 깔끔한데도 이야기의 진행에 있어 이해하는데 아무 문제도 없었다. 일단 문체가 너무 맘에 들었고 내용은 너무나도 감동이었다. 어려운 가정을 일으켜 세우고, 가장의 역할을 하는 여성. 내가 겪는다면 쉽지 않았을 힘든 인생사를 자연스럽게 흘러가듯이 나열하는 내용이 문체와도 너무나도 잘 어우러졌다. 이슬아작가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 책 한 권이 가부장제의 대안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저 무수한 저항 중 하나의 사례가 되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말을 일부분이다. 하나의 사례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누구에게나 거부감 없이 부담감 없이 술술 읽으면서 서서히 스며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가부장제 속에서 며느리의 살림노동은 결코 돈으로 .. 2023. 6. 19.
잘될 수밖에 없는 너에게 - 최서영 치열하고 격렬하게 살던 20~30대를 보내고 40대에 접어들고 나니 여유로운듯 이렇게 여유를 부려도 되나 싶은 나이가 되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슬슬 전업에 대한 고민도 되고. 이 나이가 되어서도 아직까지도 하고 싶은 일과 잘 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 꿈만 좇기에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 때의 내 나이가 너무 부담스럽다.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이 책이 나에게로 와서 공감과 위로를 건넸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고민을 하지만 해결되지는 않기에 너무 괴로울 때, 당장 눈앞을 보고 닥친 문제에 집중하면, 어느새 성장해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말에 큰 위로가 되었다. 조금 어렵더라도 최선을 택해보자고. 내 삶에 욕심을 내보자고. 나에게 관심을 갖고, 나를 .. 2023. 6.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