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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끄적끄적

사랑하는데 외로워 - 지현주

by 봄꽃이랑 기쁨이랑 꽁냥꽁냥 2023. 7. 14.

내가 상대를 과연 알 수 있다 하려면 얼마나 그를 겪어봐야 하는 걸까. 아니, 상대를 내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할까.

- 80p

누군가를 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때로는 위험한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알아가기 더이상 귀찮을 때 안목이나 판단아리는 걸 갖다 붙여 인연을 끝낸다. 내가 고등어에 대해 모르는 만큼 사람들에 대해서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상대의 단점은 어떤 상황에서 벌어진 결과인지, 그게 그 사람의 전부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데 내가 상대에 대해 판단하는 것이 옳은 걸까. 끝난 인연에 대해 함부로 평할 수 있을까.

상대도 나에 대해 모름은 물론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그는 나의 인생을 모르고 나의 삶과 세세한 근황과 오늘 일을 모른다. 그러니 나의 진심을 몰라도 상관없다. 우리는 어차피 서로를 모르니까. 진심만 있으면 된다.

- 81p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나는 사랑이라 하지만 상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 움직임 없는 꽃 한 송이라도 언제 물을 줘야 하는지, 해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여름 햇볕에 놔뒀다가는 화상으로 잎을 다 잃을 수도 있다는 것도, 공부하고 관찰해서 알아내야 한다. 가만히 움직이지 말고, 시간을 신경 쓰지 말고 고대로 앉아 있어야 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꽃봉오리가 생길 때까지 수년의 착오를 겪어야 한다. 그 포기하지 않음이 사랑 아닐까. 늘 제자리에서 지켜보고 주시하고 경청하고 반응을 기억해두는 것이, 사랑의 형상 아닐까.

- 114p


사십 년간 가지고 다닌 짐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멍하니 살다 짐을 정리할고 보니 많아도 너무 많다. 버리지 못한 짐이 빼곡히 쌓여있다. 너무 오래 담아두고 살았다. 버리지 않으면 그 시간이 머물러있는 것 같아서 여기까지 왔다. 빨리 놓아줄 걸. 과거만 바라보다간 지금을 놓치는데.

여전히 가지고 있는 집들이 있다. 언젠가는 버려야 함을 안다. 모든 물건에 내가 정한 수명이 있다는 걸 안다. 묵은 걸 비워야 새로운 것이 온다는 걸 안다. 버리지 않은 물건이, 인연이, 감정이, 울분이, 내 책임이라는 걸 안다. 비워야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안다.

- 120p

물건에 내가 정한 수명이 있다.

버리지 못한 물건들.

비워야 나아갈 수 있다.

"추억" 비워야 하는 걸까.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기억.

과거에 머물다.

현재를 놓치다.


진심을 다한 취미는 통증을 잠재웠다. 바느질을 하는 동안 두 팔과 어깨와 등에 파스로 도배를 했지만 상관없었다. 파스르 붙이고 걷을 수 있었다. 한복을 입고 교토 여행도 하고 한복을 입고 시동생의 결혼식에도 갔다. 신은 참 재미있는 분이구나 생각했다. 어떻게 낫게 하셨지. 이렇게 엉뚱한 방법으로. 시간을 잊고 즐거움에 빠져 있다 보니 통증이 저만치 있었다. 우울씨도 저만치 서서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살아있다는 자유를 느꼈다.

-124p

취미에 빠지면 힘든것도 잊고, 행복하다.

뜨개. 육아에 지치고, 내 존재에 대한 의문이 들 때쯤.

생각이 많아질 때쯤 뜨개에 빠졌다.

만 3년. 원없이 했다.

그러다 갑자기 찾아온 뜨태기.

난 아직도 방황중이다.

뜨개만 하다가 뜨개를 안하게 되니

난 뭘 해야 할까. 를 고민한다.

생각이 많아진다.


사는 건 힘듭니다. 힘든 것 중에 가장 힘든 게 사는 거일 듯합니다. 죽으면 쉽습니다. 죽지 않고 사는 게 힘듭니다. 그래서 그 힘든 하루하루와 시간시간 사이, 누리고 있는 것들을 많이 잊기도 합니다. 때문에 이 일사으이 감격을 전하고 싶은데 딱히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마치 걷지 못하던 사람이 어느 날 걷게 되었을 때, 보지 못하던 사람이 보게 되었을 때, 세상은 똑같지만 달라진 건 자신뿐이지만 감격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는 것과 닮았달까요. 누구나 걷고 누구나 보지만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잊고 살 듯 당연하게 누리는 "모든" 일상이 사실은 엄청난 행운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127p


나는 무엇을 놓쳤던가. 무얼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았던가. 내가 흘려야만 했던 눈물이 있고 터트려야만 했던 웃음이 있는데. 나는 무엇을 놓쳤을까. 눈물과 웃음너머 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갖아야 했던 내 몫은 가고, 후회가 남았다. 뜨겁게 울 걸. 절말에 빠질 걸. 절벽에서 울부짖을 걸. 나 여기 있다고 살아있다고 소리 질러 울부짖었더라면, 눈물을 흘렸더라면 거친 마음대신 보드라운 마음이 여기 있을 텐데. 솔직한 외침이 나의 진심을 지켜 주었을 텐데 마음이 말라비틀어진 나만 남았다.

냉동고 안에서 싹을 틔운 마늘이 있고, 숨을 거두기 전에 피어난 꽃이 있다. 지척에 사력을 다해 살아간 생명이 있다. 너희들이 부럽구나. 내게는 그저 후회만 있는데. 오래간만에 잠들지 못하다.

-139p


요즘 선물에 대해 그런 생각이 든다. 수고로움을 자처하는 것. 상대의 기쁨을 위해. 귀찮고 피곤해도 상대의 요구가 없어도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하는 것. 친구는 회식 내내 그걸 들고 다니느라 얼마나 번거로웠을까? 엄마는 내내 빨래를 삶느라 얼마나 고단했을까. 문득 타인의 배려에 대해 생각한다.

오래 전, 용서의 정의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에서 용서란 화낼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책을 십 수 년 전에 읽었는데 나는 요즘에야 그 정의를 이해하고 있다. 상당히 번거롭고 무지막지하게 귀찮고 복잡한 그 극단이 용서구나. 용서를 하려면 나를 다 헤집어 놔야하고 거기서 다시 빠져나와야하니까. 상대의 인지 없이 나 혼자서. 고통으로 뾰족해진 자아를 미역국의 미역처럼 풀어내야한다.

- 168 ~169p


척박했던 날들이 삶의 평범함에 감사를 갖게 해주었다. 당연히 모든 것이 실은 하나도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거듭 생각나게 해주었다. 느리고 더디게 가는 덕에.

- 180p


혼자라는 건 스스로가 스스로를 절망에 빠지도록 속이는 짓이었다. 나는 절대 자력으로 태어나지 않았으며 혼자의 힘으로 자라지 않았고 누군가로부터 배웠고 누군가들이 나와 밥을 먹어주고 술을 마셔주었다. 누군가가 나와 사랑을 했고 누군가가 나와 같이 길을 걸었다. 철저히 혼자였다고 느꼈던 순간들도 샅샅이 살펴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내 외로움에 중독되어 실은 혼자를 예찬하며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나는 늘 혼자가 아니었음을.

- 200 ~ 201p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오래 고심했다. 하지만 쉽게 결론 낼 수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고통 속의 나는 나름의 명제가 필요했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끝나지 않는 고통과 새로 시작되는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고통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없다는 믿는다면 견딤이 무의미해진다. 삶이 의미 없어진다. 그러나 모두가 겪어 알다시피 의미 없는 하루가 없듯 의미 없는 인생도 없다. 우리 모두는 어제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포기하지 않았다. 고통을 겪으면서도 삶을 움켜쥐고 있다.

고통이 다가왔을 때, 지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지쳐만 있기엔 고생이 너무 아깝다. 고통만 겪고 결과가 없다면 고통을 겪을 이유가 없다. 고통은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피하지 못할 바에 즐겨라 같은 말이 아니라 피하지 못해서 겪어야만 한다면 교훈이라도 찾고 싶다는 뜻이다. 이치나 섭리, 거창한 깨달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더 나아지는 나를 만드는 계기로 삼고 싶다.

(...)

고통의 목적은 선명하지 않다. 그 의미는 보통 함참이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된다. 누구는 고통을 어긋남의 도구로 쓰고 또 누구는 상처만으로 간직한다. (...) 사람마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도 다르다. 고통이 왜 오는지, 내게 오는 고통은 왜 달라 보이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너무 뻔한 말일지라도 선택은 나의 몫이라는 것뿐이다.

고통의 이유를 지금은 모를지라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날은 반드시 온다. 그 깨달음이 찾아오는 날 삶은 달라질 것이다. 삶이 달라진 그날 오늘을 돌아보며 고통의 이유를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견딘 내가 대견해질 것이다. 그러면 그날 고통은 나름의 역할을 다하게 된다.

- 208 ~ 210p


성공은 모두가 원하는 본능적 욕망이다. 거침없이 드러내거나혹은 억누른 채 살아가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성공 안에는 다양한 장르가 포함된다. 사회적 성취 뿐 아니라 개인적 실력, 출산, 자동차, 아파트, 결혼 등등. 인생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총망라한다.

그런데 성장은 다르다. 성장엔 성공이 포함되지 않을 수 있다. 인성의 발전, 생각의 깊이, 연마하는 어떤 실력 등등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무형이 성장에는 포함돼 있다. 반면 둘의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발전하는 모양새다. 나아짐은 꾸준하거나 끊임없이 이뤄지지 않는다. 참고 견다디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성긐 올라서있다. 가로가 아주 긴 계단처럼.

- 212 ~ 213p


인간은 나이들수록 성숙해져야 한다. 경험총량의 법칙에 따르면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늙을수록 토라지고 서운해 한다. 용서하기엔 분노가 너무나 단단해져버렸고 사랑하기엔 너무나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래도 딱딱해지지 않으려면, 보드라운 마음으로 여전히 감동하며 살아가려면 죽도록 노력해야 한다. 고집쟁이 나와 싸워야 한다. 성공이 세상과의 경쟁이라면 성장이야말로 자기와의 싸움이다.

-214p


종종 우울감이 찾아올 때가 여전히 있다. 그럴 때는 우주를 떠올린다. 유튜브에서 우주 다큐를 찾아본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거대한 우주를 상상한다. 우주의 크기를 생각하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우리는 별로 만들어졌고 별의 후손이다. 나는 빛나는 별이다. 창백한 푸른 별처럼 나라는 별은 먼지만큼 작아지고 오직 우주의 위대함만이 남는다. 그 순간 신만이 유일하게 내 안에 존재한다. 나는 가고 신만 남는다. 신은 감격으로 다가올 대 나를 왜소하게 하고 그 왜소함은 나를 소박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주가 좋고 경건이 좋고 감격과 겸손이 좋다. 별 거 아닌 묵상이 내 마음을 안정시킨다. 내 문제는 사라지고 위대함만 남는다. 위대함은 우울과 어울리지 않다. 나는 위대한 별의 후손이다.

-221 ~ 222p


우울씨와 동거하는 이들, 그리고 우울씨와 동거하지 않는 이들도 모두 과거의 영향력 아래 있다. 내가 해서는 안 됐던 말, 하지 말았어야 할 행동들, 거기에 상대의 무시와 비난까지 곱씹어 생각한다. 이렇게 받아쳐줄걸, 그렇게 하지 말걸...... 가상의 시나리오를 쓴다. 사람은 보통 내게 잘 해준 사람보다는 상처 준 사람을 기억하기 마련이다. 더 나쁜 건 과거의 내 못난 모습만 골라 보면서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는 거다. 한심하면 다행이다. 나를 가장 혐오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나 자신이다. 스스로에게 가장 엄격하고 용서하지 않는 나 자신. 사실은 다르다. 우리는 스스로의 생각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다.

- 230p

기억력이 뛰어났다. 친구와 싸우면 그 날 입었던 옷, 했던 말들 하나하나까지 다 기억해서 친구가 반박하지 못했다.

결혼 후 아이 둘을 낳고 나니 기억력은 없다. 어제의 일도 기억을 못한다. 하지만 꼭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삶에서 좀 불편하지만 사소한 것까지도 다 기억해서 내 자신을 갉아먹지는 않는다.

이불킥. 이젠 이불킥할 거리를 까먹는다.

"과거는 힘이 없다."

"감사하게도."


"감사하게도 우울씨 덕에 고통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 책을 쓸 수 있었죠. 또 입을 나불거리면 두 번째 책도 쓸 수 있겠네요. 샹큐"

- 232P

작가의 우울증이 도지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작가의 다음 책을 나도 기다려본다.


오늘 내 마음의 평량은 독자 당신이다. 당신이 우울증을 앓으면서도 지독한 우울감과 싸우면서도 스스로를 대견해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열심히 산 사람은 없다고, 내 마음의 무게를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 오늘 당신 마음의 평량이 120g이라 아무 일도 하지 못했더라도 자책하지 말기를 바란다. 나의 최선이 무의미해지지 않게 스스로를 격려해주기를 바란다. 나의 최선과 다른 사람들의 최선은 다르다. 나도 내 평량을 꽉 채워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당신의 평량이 나와 다르다 해서 그것이 더 멋지거나 훌륭하다는 뜻은 아니다. 평량의 무게가 아니라 어떤 의미를 채웠는지가 중요하다.

- 2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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