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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끄적끄적

작별인사 - 김영하

by 봄꽃이랑 기쁨이랑 꽁냥꽁냥 2023. 8. 28.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

그는 인간일까, 기계일까.

인간과 같이 감정, 고통, 아픔을 느끼는데 기계로 받아들여야 할까.

 

왜 인간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일까.

인간을 대신해 어려운 일을 하도록 만들었지만,

인간 옆에서 인간 도우미로서 감정과 공감까지도 요구하게 된다.

직접 겪지 않는 공감은 진짜 공감이 아닌지라

로봇에게 감정과 고통까지도 느끼게 했다는 것.

이런 로봇을 만든 것이 잘못이라면,

부모가 아이를 낳는 것도 잘못이라고 한다.

이미 존재하는 누군가를 위해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것이지, 아이의 선택이 아니기 때문.

 

"인간을 창조한 신이 정말 있다면 이런 고통을 겪었겠구나, 아니 겪고 있겠구나."

 

선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인간 배아를 복제해서 태어난 클론.

 

어디까지가 "나"일까.

몸의 모든 부품을 교체할 수 있다면, 그 부분들은 '나'가 아닌 거잖아. 그게 없어도 나는 나일까?

 

인간이란 무엇이고, 인간임을 구별할 수 있는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해 본다.

 

멀지 않은 미래에 도래하게 될 인공지능 시대에 고려할 부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 부분과 더불어 철학적인 생각도 많이 하게 된다.

'나의 용도'는 무엇일까.

 


 

"우주는 생명을 만들고 생명은 의식을 창조하고 의식은 영속하는 거야. 그걸 믿어야 해. 그래야 다음 생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거야.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그때 나는 처음으로 어쩌면 이들도 인간이 심어놓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신까지 믿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저토록 삶에 집착하며 죽음을 피하고자 한다면, 어째서 그들이 사후 세계를 약속하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 단언할 수 있겠는가.

(...)

선이는 기계가 일단 의식을 가진 이상, 우주를 지배하는 정신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고, 그러니까 인간의 의식과 깊은 수준에서 '연결'되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기계에게 의식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우주를 지배하는 의식이 태초에 인간에게 길들었듯이 이제 기계도 인간과 같은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의식은 선이가 늘 말하는 '우주정신'의 일부이므로,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없고 다만 그렇게 만든 어떤 조건과 상황이 문제라는 식이었다. 기계의 포악성은 그것이 기계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포악하게 만든 무언가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수용소 쪽을 돌아보며 조금 머뭇거렸는데, 이렇게 말하는 게 지금도 잘 납득이 안되지만, 분명 그리움과 비슷한 어떤 감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수용소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

거기 들인 노력과 시간을 버리고 떠난다는 게 조금은 갑작스럽고 아쉬웠던 것 같다. 다시 낯선 환경에 던져지고 보니 그저 익숙한 것이 더 나아 보였을 수도 있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꼭 좋았던 무언가를 향한 것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저 익숙한 무언가를 되찾고 싶은 마음일 수 있다. 수용소를 돌아보던 그 마지막 순간에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은 그런 것들이었다.

 

 


 

 

"제 생각은 달라요. 이 우주에 의식을 가진 존재는 정말 정말 드물어요. 비록 기계지만 민이는 의식을 가진 존재로 태어나 감각과 지각을 하면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었어요. 고통도 느꼈지만 희망도 품었죠. 이 우주의 어딘가에서 의식이 있는 존재로 태어난다는 것은 너무나 드물고 귀한 일이고, 그 의식을 가진 존재로 살아가는 것도 극히 짧은 시간이기 때문에, 의식이 있는 동안 존재는 살아 있을 때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어요."

(...)

"의식이 있는 존재는 돌멩이나 버석과 달리 자기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요. 다른 존재의 고통에도 공감할 수 있고, 우주의 역사나 기원에 대해 알아갈 수도 있어요. 자기에게 고통을 준 존재들을 용서할 수 있고, 그 고통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곰곰히 되새긴 다음, 그런 일이 자신에게든, 아니면 다른 누구에게든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어요."

(...)

"우리가 대신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어리석은 자만이에요. 누가 정말로 의미 있는 일을 하게될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

"그래요. 고통에는 의미가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세상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건 의미가 있어요.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의식이 있는 존재들이 이 우주에 태어날 수밖에 없고, 그들은 살아 있는 동안 고통을 피할 수 없어요. 의식과 충분한 지능을 가진 존재라면 이 세상에 넘쳐나느 불필요한 고통들을 줄일 의무가 있어요.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더 높은 지성을 갖추려고 앴는 것도 그걸 위해서예요."

 

 


 

 

"(...) 삶을 향한 의지라고 하면 뭔가 심오하게 들리지만 그저 그들에게도 고통이라는 감각 체계를 내장해 스스로를 보호하도록 만들었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고통은 그 자체로는 악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고통은 생물체를 보호하는 필수적 장치입니다. 고통을 느껴야 위험을 피해 자신을 지키려 할 것이고, 그래야 인간은 비싼 돈 주고 산 소유물을 보존할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그럿게 고통과 공포, 불안을 느끼도록 만들어진 존재를 계속 비활성화하는 작업이 간단할 리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그들의 고통에 공감을 하니까요. (...)"

 

 


 

"(...) 이타심으로 아이를 낳는다는 게 가능할까요? 실은 다들 이미 존재하는 누군가를 위해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

 

"(...) 인간을 창조한 신이 정말 있다면 이런 고통을 겪였겠구나, 아니 겪고 있겠구나."

 

 


 

나는 인간의 유전자에서 배양되었고, 너나 민이는 인간의 설계대로 제작됐기 때문에, 나는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생에 대한 집착도 함께 프로그래밍되어 있다고 생각해. 끝이 오면 너도 나도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거야. 난 그렇게 믿어. 그런데 민이는 아직 아니야."

끝이 오면 너도 나도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거야. 선이는 옳았다. 훗날 때가 왔을 때, 선이도 나도 일만의 의심 없이 알 수 있었다. 끝이 우리 앞에 와 있고,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게 정말 그 휴머노이드를 위해서일까? 인간에게 필요한 장기를 생산하기 위해 선이와 같은 클론을 배양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인간은 모든 것을 도구로만 여기고 그것을 활용을 고민한다. 나의 '용도'는 정확히 무엇일까?

 

 


 

생의 유한성이라는 배음이 깔려 있지 않다면 감동도 감흥도 없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이 한 번뿐이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모든 것이 절실했던 것이다. 이야기는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삶을 수백 배, 수천 배로 증폭시켜주는 놀라운 장치로 '살 수도 있었던 삶'을 상상 속에서 살아보게 해주었다. 그러니 필멸하지 않을 나로서는 점점 흥미가 떨어졌던 것이다.

 

 


 

"안 하기를 잘했어. 기다리면, 충분히 기다리면 나와 민이, 그리고 너도 모두 다시 만날 거야. 수십억 년이 걸리겠지만."

나는 가만히 선이의 손을 잡았다.

"아니야. 그렇게 오래는 안 걸릴 수도 있어."

"너도 민이를 기억하고, 나도 민이를 기억하지. 민이는 그렇게 우리 기억 속에서 살아 있으면 돼. 억지로 다시 만들 필요는 없어. 그런데 너 그거 알아?"

 

 

 


 

탈고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고를 다시 읽어보았다. 이제야 비로소 애초에 내가 쓰려고 했던 어떤 것이 제대로, 남김 없이 다 흘러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문윽 어떤 이미지가 하나 떠올랐다. 누군가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장면이었다. 나는 노트를 펼쳐 적었다. '외로운 소년이 밤하늘을 본다.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나에게 이 소설의 인물들은 언제나 그런 이미지였다. 혼자이고, 외롭지만 어떻게든 이 고통의 삶을 의미있게 살아갈 이유를 찾는 존재들. 그들이 이제 내 손을 떠나고 있고, 이제 이런 이야기는 다시는 못 쓸 것 같다.

-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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