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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끄적끄적

사랑은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다 - 스텔라 황

by 봄꽃이랑 기쁨이랑 꽁냥꽁냥 2023.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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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예견되어 있는 아이를 온갖 의술로 치룔를 해서 겨우 연명하고 있는 삶. 아이에게 엄청난 고통이 따를 것을 알면서도 그 손을 놓지 못하고 기어이 붙들고 싶은 부모.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어른들의 선택에서도 고민이지만, 말도 못하는 아이여서, 이 모든 것이 어른들의 결정이어서, 어른들의 욕심에 아이가 고통스럽지 않을까 싶어서 너무 가슴이 아프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엄마의 마음도 알 것 같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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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사랑하는 이가 죽음의 언저리에 서게 된다면 이 책을 읽은 다음에는 다른 선택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더 큰 사랑은 많이 아플 때 잘 보내주는 용기이자 배려일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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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일어나면 100퍼센트, 일어나지 않으면 0퍼센트. 이게 확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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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내 입안으로 얼음같이 찬 금속 기구를 넣고 계속 튜브로 쑤셔댄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쫙 끼쳤다. 내 입안에서 나온 핏물로 그 쓴 피맛을 느끼고 삼키고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소스라치게 놀라 주저앉을 뻔했다. 아직 통증을 느끼는 살아 있는 생명체라 고마워야 할지 아니면 차라리 죽어 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의료인지, 의술을 가장한 고문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에이든이 고통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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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모의 사랑은 무책임으로만 점철되어 아이에게 아픔만 초래한다. 한 부족은 아이는 신의 귀한 선물이라고 가르친다. 아이들을 함부로 다루면 신이 다시 데려간다고. 지켜줄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회가 아이를 보호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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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는 아기를 집으로 데려가는 것이 최종 목표가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아기와 교감하고 추억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둡고 긴 터널 속이지만 잠깐이나마 행복을 느꼈다면, 잊을 수 없는 감정을 나눴다면 그 길 끝이 낭떠러지일지언정 어떠하랴. 내가 돌보는 아기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 안정적인 상태로 부모와 일분 일초를 더 의미 있게 보냈다면 내 정성이 헛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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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아이의 심장이 뛰지 않으면 어떠랴. 엄마에게는 아직 살아 숨 쉬는 아이인 것을. 내 사랑인 것을. 에밀리 디킨슨이 널리 알린 것처럼 세상엔 "사랑밖에 없다. 그것만으로도 차고 넘쳐서. 그 사랑의 무게만큼 자국이 짙게 남더라도." 그곳에는 오직 사랑만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그것, 엄마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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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아픔과 괴로움을 가져다준다. 아픔은 줄지 않지만, 괴로움은 선택할 수 있다. 슬픔 안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아픔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을 줄일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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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에 동의하고 거부하는 것은 의사 개인의 자유지만, 전문가의 소견을 넘어 아기에 대한 의무를 더해 부모가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미래가 없는 고통은 인간에게 주어져서는 안되기에, 18번 삼염색체 증후군 아기의 삶을 지지하고 돕고 싶지만 선은 그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큰 수술을 받아야만 생이 연장된다면, 그 연장된 삶이 길지 않다면, 작은 아기에게 크나큰 통증만 가져다주는 의료 행위는 멈춰져야만 한다.




 
 



<당신은 생각보다 강하다>의 저자이자 정신과 전문의 전미경은 통제할 수 없는 과거는 버리고 통제할 수 있는 현재에 모든 에너지를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란 내가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편집한 기억의 조각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만약의 시나리오를 자꾸 쓰고 다시 내 기억을 재생하고 내 자신을 괴롭히는 짓은 부질없기에.
- 반짝이는 아름다운 순간들
 


 
아기를 죽음의 바다에서 건져내는 그물이 되고 싶었다. 그 괴로움을 끝내주고 싶었다. 가끔은 아기가 너무 작아 그물망을 빠져나간다. 그럴때면 죽음의 파도가 아기를 삼키는 것을 지척에서 봐야 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알려달라는 청을 하면서 불현듯 알았다. 이 부모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줄 수 없음을. 나에게는 두 아이가 있고 수많은 추억이 있다. 야속하게도 그들에겐 하나도, 한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 죽음을 예약한 탄생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닐 로스 교수는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한 일에 대한 후회'보다 오랫동안 더 자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른 상실도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가 더 크다고 했다.

어떤 종류의 후회는 저지르고 나서 다시 담을 수 없기에 더 아리다. 그 선택이 틀렸다는 것을 아는 순간, 할 수 있는 바가 나를 향한 증오밖에 없어 더 아프다. 융단폭격 수준의 미움과 슬픔을 견뎌냈는데, 용서를 구할 상대조차 없어 더 길고 어두운 밤이었다.
- 주워 담을 수 없어서 더 마음 아픈
 


 
'완벅한 아이'를 바라는 부모의 심리를 분석한 전문가들은 이를 타인지향적 완벽주의라 부른다. 완벽주의자 부모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 비해 자식의 완벽성에 집착한다고 한다. 자식의 완벽 정도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척도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 엄마가 찾지 않는 아기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만약 이 모든 시술과 수술을 엄마에게 했다면, 엄마는 똑같은 결정을 했을까? 조심스레 예상하건대, 아닐 것이다. 혹시나 시작했더라도 통증에 울부짖으며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인간으로서 견뎌야 하는 고통의 양과 시간은 최소한이어야만 한다. 우리는 아기의 고통 없는 삶을 위해 싸웠으나 결국 지고야 말았다. 아기는 고통 속에서 삶을 마쳤다. 이다지도 슬프고 참담한 패배가 있을까. 소리 없는 울음을 내지르는 아기를 고통의 세계에서 구해주고 싶었다. 그 길은 아무리 더듬어도 종국에는 찾지 못했다.
- 코가 없는 아기
 


 
누군가가 내 입안으로 얼음같이 찬 금속 기구를 넣고 계속 튜브로 쑤셔댄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쫙 끼쳤다. 내 입안에서 나온 핏물로 그 쓴 피맛을 느끼고 삼키고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소스라치게 놀라 주저앉을 뻔했다. 아직 통증을 느끼는 살아 있는 생명체라 고마워야 할지 아니면 차라리 죽어 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의료인지, 의술을 가장한 고문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에이든이 고통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 노숙자 엄마와 약속한 40주가 되던 날
 



그들에게는 아기를 집으로 데려가는 것이 최종 목표가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아기와 교감하고 추억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둡고 긴 터널 속이지만 잠깐이나마 행복을 느꼈다면, 잊을 수 없는 감정을 나눴다면 그 길 끝이 낭떠러지일지언정 어떠하랴. 내가 돌보는 아기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 안정적인 상태로 부모와 일분 일초를 더 의미 있게 보냈다면 내 정성이 헛된 것은 아니다.
- 올리비아의 생일 파티는 매년 열린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의 심장이 뛰지 않으면 어떠랴. 엄마에게는 아직 살아 숨 쉬는 아이인 것을. 내 사랑인 것을. 에밀리 디킨슨이 널리 알린 것처럼 세상엔 "사랑밖에 없다. 그것만으로도 차고 넘쳐서. 그 사랑의 무게만큼 자국이 짙게 남더라도." 그곳에는 오직 사랑만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그것, 엄마의 사랑.
- 차마 버리고 갈 수 없는 어미의 마음
 



수녀였던 예술가, 코리타 켄트는 "순간을 사랑하라, 그 순간의 에너지가 모든 경계 너머로 퍼질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깊은 슬픔에 빠져 있기보다, 가끔 찾아오는 '반짝이는 순간'에 집중하면 상실 후의 삶을 이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한 아이의 부재를 다른 아이들로 채울 수는 업다. 하지만 살아갈 이유가 하나라도 있다면, 애도의 과정이 조금 덜 괴로울 수 있다.
- 슬픔 안에서 살아남는 방법
 



정답은 없지만 오답은 있는 갈림 기로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는 부모 때문에 고통받는 것은 아기다. 그로 인한 슬픔은 오롯이 나의 몫이 된다.

약자의 권리가 더 보호받는 정당하고 평등하며 균등한 사회가 되길 바라본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약한 사람은 말도 할 수 없고, 심지어 자신의 몸에 대해 결정할 수 없는 태아와 아기가 아닐는지.
- 낙태 위헌
 



아기의 생명을 구해 잠시나마 기쁨에 뛰었던 내 심장을 멈추게 하고 싶었다. 조금 더 일찍 그만두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과 생에 대한 맹목적 집착을 없애버리고 싶었다. 멈춰야 할 때를 알지 못한, 그만두어야 할 때를 맞추지 못한 미련한 의사 때문에 하늘로 돌아가 별이 되었어야 할 아기를 뜨는 해와 지는 별도 모르는 이로 만들었다.
별을 삼키고 태어났는데, 내가 그 별을 보지 못해 하늘로 올려 보내지 못한 아기.
- 멈춰야 할 때를 안다는 것
 



치료에 동의하고 거부하는 것은 의사 개인의 자유지만, 전문가의 소견을 넘어 아기에 대한 의무를 더해 부모가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미래가 없는 고통은 인간에게 주어져서는 안되기에, 18번 삼염색체 증후군 아기의 삶을 지지하고 돕고 싶지만 선은 그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큰 수술을 받아야만 생이 연장된다면, 그 연장된 삶이 길지 않다면, 작은 아기에게 크나큰 통증만 가져다주는 의료 행위는 멈춰져야만 한다.
- 미래가 없는 고통은 무의미한 일
 



환자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어느 정도의 지료와 검사는 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이는 가족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고, 후회가 남지 않을 수 있게 돕는다. 그 완벽한 적정선을 지키는 것이, 그 과정을 도와주는 것이 의료진의 일이다. 의사마다 다르지만 개인적으로 부모의 결정을 존중하는 편이다. 통증이 없다는 전제하에, 지연시킬 수 있는 죽음이라면 더욱 그렇다. 부모가 아기와 추억을 쌓고 마음을 추스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다. 후에 부모가 아기와의 추억을 꺼내 보며 이를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으로 삼을 수도 있다. 또 어떤 의미에서는 부모에게 더 나은 삶을 만들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진통제와 진정제를 투여하고, 사랑과 정성으로 돌보아도 아기는 통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 단시간의 치료로 나아질 수 있다면 시도해볼만 하다. 하지만 계속 아픔이 지속되고 결국은 어두운 미래만 남는다면? 그렇다면 편안한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부모가 아기와의 시간이 더 필ㅇ하다면 최소한의 시간을 최대의 질로 채우고, 아기는 보내줘야 한다. 더 큰 사랑은 나의 욕심과 희망을 뒤로 하고 아기를 온전히 보호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명 치료를 개인적인 이기심 또는 희망을 일환으로 원하는 환자 가족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한다. 나도 그중 한 명이기에. 하지만 그 가족들에게 또 나에게 끊임없이 되뇌인다. 더 큰 사랑은 나를 내려놓고 오로지 그 사람을 위해, 많이 아플 때 잘 보내주는 것이라고.
- 더 큰 사랑을 실천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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