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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끄적끄적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 정지아

by 봄꽃이랑 기쁨이랑 꽁냥꽁냥 2023. 10. 5.




🔖
“천천히 오래오래 가만히 마시면 누구나 느끼게 된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연민을…”

진한 감동과 여운으로 지친 우리네 삶을 위로해주는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작가의 음주 예찬 에세이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알게 된 정지아 작가.
이 책은 술과 사람에 대한 에피소드를 엮은 정지아 작가의 첫 에세이다.


나는 술을 뒤늦게 배웠고,
소주와, 맥주, 와인을 마시지만
술이 약한 관계로 독주는 마시지 못한다.
정지아 작가가 어찌나 위스키에 대해서 홀리게, 맛있게, 궁금하게
예찬을 했는지, 조니워커 블루 먹어보고 싶다.


술을 먹게 만드는 정지아 작가의 음주 예찬 에세이.
음주가라면 공감하면서 이 책을 안주삼아 술을 마실지도.


술, 사람과의 관계 에피소드.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과의 관계에는 유통기한이 없다는데..
나는 사람관계를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많은 생각이 오가는 시간이었다.



📖
"머시매들은 밤새 놀아도 되고 가시내들은 밤새 놀먼 안 된당가? 고거이 남녀평등이여? 자네는 진정한 사회주의자가 아니그마!"
(...)
"느그 아부지, 참말로 멋져분다."
누군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술잔이 여섯 개다야."
내 부모는 남녀 평등주의자. 여자애들 잔까지 살뜰하게 챙긴 것이다.
"술은 어른헌티 배와야 한댔는디 술도 안 따라주고 가부셨네이."
그러게. 쿨하기도 하시지.
(...)
자연의 장관 앞에서 다들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 전등을 하늘로 비췄다. 빛기둥 안에서 주먹만 한 눈송이들이 수직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순수에 압도당한 최초이자 마지막 경험이었다. 그날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토록 순수하게, 이토록 압도적으로 살고 싶다고.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던 걸 보면 친구들 역시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열아홉, 그때는 믿었다.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을 순백의 시간을 순백의 시간으로 살아낼 수 있을 거라고.
(...)
눈이 퍼붓는 날이면 그날이 떠오른다. 고요히 내리는 눈처럼 고요했던 내 인새으이 첫 술자리. 다음의 40년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 걸까.
- 첫 술은 아빠

📖
"너는 왜 사니?"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도 사는 이유를 알지 못했으니까. 그저 죽음을 선택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고, 나에게는 그런 용기조차 없었을 뿐이다. 지금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어찌어찌 태어났으므로 우리는 어찌어찌 살아내야 한다. 고통이 더 많은 한 생을. 소설적 성취? 사회적 명예? 죽는 순간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안다. (...) 나에게 마음 두고 있는 존재들을 슬프게 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꾸역꾸역 살아내는 것이다.
- 너의 푸른 눈동자에 건배!

📖
그들은 힘차게 페달을 밟아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나는 보았다. 부부의 시선에 서린 노여움을. 어린 시절의 나도 그러했다. 누군가의 선의가 욕보다 모욕적이고 비참할 때가 많았다. 그들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고 싶었을 것이다. 회장이 선심 쓰듯 쥐여준 100달러가 아니라.
회장님은 물론 선의였다. 어려서 찢어지게 가난했다는 회장님은, 밥조차 배불리 먹지 못한 어린 시절이 천추의 한이 되어 직원 식당의 음식만큼은 최고여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회장님은, 일하는 부모를 마중 나온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노동자의 자식이 그저 눈에 밟혔을 뿐이겠지. 그러나 최선을 다해도 가난에서 쉬 벗어날 수 없는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노동자는 그 선의에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다. 세상은 이렇게 복잡하고 어렵다.
- 타락의 맛, 멕켈란 1926

📖
"쌤. 난 왜 이렇게 이기적이지? 정말 못된 거 같애."
기쁘게 답했다.
"좋다 좋아. 아는 게 어디냐? 것도 모르고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천지 삐까리에 널렸는데!"
이기적이든 속물이든 나는 반성하는 A가 참으로 어여쁘다.
- 흩날리는 벚꽃과 함께 춤을

📖
다정한 사람은 누구에게다 다정하다. 불행히도 혹은 공평하게도 다정한 사람은 다정하지 않은 사람보다 외로움을 잘 못 견디는 경우가 많다. 다정하니까. 마음이 말랑말랑하니까. 늘 아내의 곁에서 다정하게 함께했던 A의 아버지에게는 아내의 공백이 못 견디게 크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리도 빨리 새로운 다정의 대상을 찾아낸 게 아닐까? (...) 그날 나는 다정에 대한 오랜 갈급함을 버렸다. 다정한 사람도 무심한 사람도 표현을 잘하는 사람도 못 하는 사람도 다 괜찮다. 각기 다른 한계를 끌어안고 사는 셈이니까.
- 다정의 완성

📖
나는 아직도 할머니 편이다. 술이 소화제라는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술꾼이라도, 알코올중독이라도, 나처럼 날씨라든가 실연이라든가 이따위 핑계를 댈 수 있을 뿐이다. 술이 소화제라는 명언은 정말 술 덕분에 얹혀 있는 무엇인가를 쑥 내려본 경험이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다. 할머니의 마음에 얹혀 있던 게 무엇인지 영원히 알 길은 없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할머니가 자신의 제사상이나 받으러 와서 겨우 술을 마시겠구나 싶으면 안타깝다. 나라도 소주 한 잔 올리고 싶은 심정이다.
- 술이 소화제라

📖
통조림에는 유통기한이 있지만 관계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선배와 알고 지낸지 근 30년 만에 나는 이제야 선배를 제대로 보기 시작한 것 같다. 세월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영 아닌 것 같다가 좋아지는, 그런 관계도 세상에는 있는 것이다. 위스키가 그러하듯이.
- 관계의 유통기한

📖
우리집 술자리에서 참으로 많은 발견이 있었다. 많은 친구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상처를 드러내며 울고, 자기를 넘어서기도 했다. 알고 보니 상처 없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에게 술은 자신의 상처는 물론 치졸한 바닥까지 드러낼 수 있게 하고, 그로 인해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친밀하게 좁혀주는, 일종의 기적이다. 술 없이 이토록 솔직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나는 그만한 용기가 없어 술의 힘을 빌 뿐이다.
(...)
일로 마시는 술은 술이 아니다. 자기로부터 해방되어 오롯이 자기로 돌아갈 수 있어야 진짜 술이다.
-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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